cornelius - 누가 그의 카스테라를 훔쳐 먹었나?

(아마도) 2002년도 mdm 2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래 잡지에는 플리퍼스 기타 해체 이유와 관련된 치정사건설에 대한 별첨이 있었으나 여기서는 뺐습니다. 혹시 이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은 개인적으로 컨택하시거나 수천권의 mdm이 잠자고 있는 홍대 부근의 건물을 찾아보세요.) 지금 다시 읽어보니 닭살스러운 표현들로 가득하군요. 뭐,누구에게라도 스윗한 글을 쓰고 싶을 때는 있는 법이니까요. 플리퍼스 기타의 멤버 탈퇴 사유 중 다꼬야끼가업전수설은 당연히 농담입니다. 예전에 딴지 일보에서 놀랍게도 콩가루집안인 시부야케이의 족보구축을 꿈꾸었(다 실패했)던 카오루씨가 이것을 농담으로 받아들여서인지 진담으로 받아들여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코넬리우스 기사를 쓰면서 저 얼토당토않은 음모(외 확인할 수 없는 여러가지)를 그대로 배낀 적이 있었습니다. 전자의 경우라면 나쁜놈일테고 후자의 경우라면 단지 멍청한거겠죠? 그리고 두 경우 중 어떤 경우라도 자신의 유머감각이 없음을 증명하고 있음을 부정하기는 힘들테구요. 제가 너무 가혹하게 얘기했나요. 뭐, 누구에게라도 씨니컬한 글을 쓰고 싶을 때는 있는 법이잖아요? :-P


코넬리우스(cornelius), 본명은 케이고 오야마다. 그의 이름을 입을 모아 발음하는것만으로도 대뇌피질에서 땀이 한방울 뚝 떨어지는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환타스틱플라스틱 머쉰(fantastic plastic machine)이라면 말리브 해변가에서 야자수를 따먹는 기분으로 나긋하게 폴짝폴짝 뛰어주면 되고 스나가 티 익스피리언스(sunaga t' experience)라면 라틴 리듬에 몸을 맡기고 적당히 근육을 이완시켜주는 것만으로 충분하지만 코넬리우스는 대체 어떤식으로 반응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혹은 본능적으로옳은지 전혀 알 수 없거든요. 그런 아티스트를 여러분께 소개하고 설명해야한다니 이것참,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코넬리우스를 설명하려는 행위는 음, 적절한 비유를 찾아보자면 아이덴티티라는 이름의 홀로그램 지형을 걷는것 같달까요. 이 비유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잠시 코넬리우스 음악의 화학적 분석이라는걸 시도해보자면. 시부야-케이(shibuya-kei)의 중요한 자양분이 된 60년대의 황금 라운지 사운드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가 싶으면 별안간 헤비한 기타 사운드가 우퍼 스피커를 잡아먹을듯이 두들겨주고 때론 노골적일 정도로 따사로운 비치 보이스(beach boys)풍의 샤랄라 멜로디로 심장을 녹이더니 갑자기 드럼엔베이스(drum n' bass)를 뛰어넘어 드릴엔베이스(drill n' bass)에 가까운 쪼갬비트가 등장하고. 어휴, 화학적 분석이라는게 과연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방대하고 복잡한 꼴라쥬입니다. 뭐, [69/96]에선 비발디의사계와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의 'iron man'을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섞어버리는 형이니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만은.

케이고 오야마다의 아이덴티티부재 혹은 아이덴티티과잉은 학창시절부터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크램프스(the cramps),스미스(the smith),지저스엔 메리체인(the jesus and mary chain),스페셜즈(the specials),미스피츠(misfits) 심지어는 자국의 아이돌팀인 매치(match)나 체커스(checkers)까지. 같은 시기에 무려 10개 정도의 전혀 다른 장르의 카피 밴드에서 활약을 했다는군요. 그래서 축제시즌때면 고딕풍의 의상을 입고 크램프스 카피밴드에서 기타를 치다가 바로 땡땡이무늬 모자를 쓰고 스페셜즈의 카피 밴드에서 기타를 쳤다나요. 그러다 1987년 유키코 이노우에라는 친구와 피위 식스티스(pee wee 60's')라는 팀을 만들면서 그는 자신의 음악을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1988년 중학교 테니스부에서 같이 테니스를 치다가 '난 비치 보이스를 좋아해' '아니 너도 비치 보이스를 좋아한단 말이야?' 류의 대화를 나누다 친구가 되었던 오자와 겐지가 동경대 문학부에 입학하고 다른 두명의 덩달이 멤버들과 합류를 하면서 공식적으로 케이고 오야마다 최초의 팀으로 알려져 있는 롤리팝 소닉(lollipop sonic)이 결성됩니다. 참고로 롤리팝 소닉이라는 팀명은 lollipop shop과 sonic youth의 합성어라고 하는군요. 웁스. 이런 기괴한 조합이라니. 그 후 오리지날러브(original love)와의 조인트 공연을 시작으로 라이브클럽을 전전하며 활동하던 롤리팝 소닉은 프로뮤지션으로 거듭나기로 결정하고 폴리스타(polystar)와 계약을 하는데요. 그 과정에서 가업인 다고야끼집을 잇기 위해서, 잘생긴 다른 멤버들보다 인기를 못 얻을것 같아서 등의 이유로 세명의 멤버가 빠지고 롤리팝 소닉은 케이고 오야마다와 오자와 겐지 둘만 남습니다. 이 둘은 레코드사의 요청으로 플리퍼스 기타(flipper's guitar)로 개명하고 1989년 데뷔 앨범 [海に 行くつもりじゃなかった(three cheer's for our side)]를 발표합니다.
플리퍼스 기타의 데뷔음반은 진부하지만 합당한 표현을 빌리자면 일본 대중음악사에 한획을 그을만한 것이었는데요. 일방적으로 영미음악만을 추종하던 무리들에게 '니뽄에서도 이런 음악이 가능하다니!'라는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것이지요. 굳이 비유를 하자면 얼터너티브를 촉진시켰던 너바나(nirvana)의 [nevermind]나 한국에서도 헤비메탈을 할수 있다는걸 보여준 시나위의 데뷔음반만큼의 위력을 지닌 음반이었달까요. 뒤의 비유는 좀 띠껍낀 하지만 아무튼 덕분에 일본에선 때아닌 밴드 붐이 일기도 했다는군요. 그 후 역시나 완성도 높은 두 앨범 [camera talk](이 앨범으로 플리퍼스 기타는 레코드 대상에서 뉴아티스트 부분을 수상합니다. 와우!), [doctor head's world tower] 발매하며 승승장구하던 두 팀은 91년 투어를 취소하고 돌연 해체합니다. 비록 3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플리퍼스 기타가 일본 대중음악사에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어마한것이었는데요. 60년대 라운지뮤직, 스웨디쉬팝, 남미팝 등 이빨이 썩을것 같은 달디 단 음악스타일을 적당히 얼버무린, 꿀을 찾은 꿀벌처럼 마냥 행복한(happy like honey bee!) 사운드는 속칭 네오 시부야-케이(neo shibuya-kei)로 일컬어지는 90년대 중반 이후의 일본 밴드들이 아직도 참고하고 있을 정도니깐요.

플리퍼스 기타를 해체 후 케이고 오야마다는 영민하게 자신을 일본 음악씬의 거대 괴수로 키워나갑니다. 92년 네오 시부야-케이 뮤지션들의 보금자리가 될 트라토리아 레코드(trattoria records)라는 유쾌하게 혀를 튕겨야만 발음할 수 있는 이름의 레이블을 설립하구요. 카히미 카리에, 피치카토 파이브(pizzicato five), 브릿지(bridge) 등 여러 팀들의 프로듀서로서 이름을 날리고 심지어는 여장을 하고서 CF에도 출연을 합니다. 그리고 93년 9월 코넬리우스라는 브랜드로 다시 태어난 케이고 오야마다의 첫 싱글 'sun is my enemy'가 발표되고 쉬이 예측 가능한 수순대로 큰 화제를 모읍니다. 게다가 불과 2개월전에 오자와 겐지의 첫 싱글이 발매되었으니 일본 프레스 편집부에선 적당한 화제거리를 찾았다며 잔치라도 벌였겠지요. 참고로 코넬리우스라는 이름은 '혹성탈출'이라는 영화의 주인공 원숭이 이름에서 따왔다고하며 굳이 솔로인데도 밴드명을 붙인 이름은 T셔츠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라는군요. 그의 바램대로 94년 이나중 탁구부의 마에노도 입었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도 입고 있는 코넬리우스 티셔츠가 빼곡히 박힌 첫 앨범 [first questien award]가 발매됩니다. 본작은 플리퍼스 기타시절의 extended version이라 할만한 음반이었는데요. 오자와 겐지가 서정적인 포크 음악으로 플리퍼스 기타 팬들을 고의적으로 배제했다면 코넬리우스는 아예 작정하고 기존의 팬들을 흡수하려는 듯한 인상을 풍겼던걸로 기억합니다. 코넬리우스의 야심찬 거대괴수 음모가 본격적으로 드러난건 95년 발매된 [69/96]에서부터였습니다. 본작을 통해 코넬리우스는 음악적 스펙트럼을 한층 넓히고 꿀벌처럼 가벼웠던 자신의 음악에 스피디함과 중량감을 부여합니다. 코넬리우스가 라이브시 애용하는 플라잉 브이 기타가 활약할때가 온거지요. 그리고 96년 6월 9일에는 전작의 이름을 뒤집은 리믹스 음반 [96/69]를 발표합니다. 본작에는 넓어진 음악적 스펙트럼을 과시라도 하듯이 피치카토 파이브, 히데, 스차 다라 파(scha dara parr), 타큐 이시노 등 그바닥의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참여를 하는데요. 사실 본작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에 대한 단서는 [69/96]의 96번째 히든트랙에 살포시 드러나있기도 하지요. 그리고 97년 옆집에 사는 모던소녀 순이도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그의 최고(괴)작 [fantasma]가 발매됩니다. 상당량의 샘플과 기타 노이즈 그리고 비치보이스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멜로디 (심지어 역시 비치보이스를 답습하는 애플스인스테레오(apples in stereo)의 로버트 슈나이더(robert schneider)와 누가누가 더 비치보이스 같나 경쟁하기도 하지요) 등 경계라는게 무색할만큼 폭 넓은 스펙트럼과 컨엔페이스트, 믹스엔매치가 난무하는 본작은 98년 마타도어(matador) 레이블을 통해 전세계에 발매되는데요. 아마 서양인들에게도 적잖이 충격적인 앨범이었을겁니다. CMJ가 선정한 그해의 앨범에서 당당히 10위안에 들고 레이건 매거진에서 코넬리우스를 팝컬쳐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사람 50인 중 한명으로 선정하는 사건이 벌어질 정도였으니깐요. 이바닥말로 일본 뮤지션들의 '형'에서 인터네쇼날 '형'으로 거듭난거지요. 그리고 인터네쇼날 형답게 영미프레스에서 자신과 종종 비교되었던 벡(beck),콜드컷(coldcut),블러(blur) 등 영미권의 명망높은 뮤지션들의 곡을 리믹스 하고 그 뮤지션들에게 자신의 곡을 리믹스시키기도 하고 그걸 앨범으로 발매하기도 하고 타카코 미네카와 결혼도 하고 음반 프로듀스도 해주고 임신도 시키며 살랑살랑 여유롭게 밀레니엄 텐션을 넘깁니다. 그리고 2001년 10월 여전히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문제작 [point]를 발매합니다.

새 앨범이 나올때마다 항상 전작 혹은 직계선배 밴드를 들먹거리는 평론가들의 관행을 따라 본작도 전작과 비교해서 얘기해봅시다. [fantasma]는 서프라이징 파티의 감격을 고스란히 간직한 음반이었습니다.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문을 열면 폭죽과 사람들의 환호가 머리위로 쏟아지고 방 한군데에는 달콤한 크림케익이 놓여있을 때의 감격 말이에요. 허나 충격요법이라는건 여러차례 위력을 발휘하기 힘든 법. 이전보단 덜 조심스러운 마음가짐으로 방문을 열어 봅시다. 와우! 이건 이전과는 다른 의미에서 더욱 서프라이즈해요. 폭죽도 사람들의 환호도 없지만 대신 커다란 숲이 방안에 가득 들어차있거든요. 계곡에선 조르르 물이 흐르고 풀밭에선 귀뚜라미가 찌르르 울고 나무에선 새가 꺄르르 우짖고. 차라리 시끌벅적한 파티보단 이쪽이 더 마음이 편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문득 달콤한 크림케익이 없다는걸 깨닫게 됩니다. 바로 플리퍼스 기타때부터 지금까지 쭉 그의 음악을 관통해온 아름다운 멜로디 말이에요. 게다가 그는 지금껏 수많은 평론가들의 불필요한 분석을 '단지 난 팝을 하고 싶을 뿐이다'라는 말로 일축시켜오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point]에서 들을 수 있는건 샘플링된 그의 보이스와 자연의 소리 그리고 실제 악기 소리가 팝적 문법을 정면으로 위배하며 재배치된 사운드의 구조물 뿐입니다. 게다가 유일하게 멜로디의 자욱이 분명한 곡인 'brazil'도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 carlos jobim)의 커버곡인데다가 보이스도 오토튠으로 적당히 찌그러뜨려놨구요. 대체 무엇이 코넬리우스의 음악을 뒤바꿔 놓은 것일까요. 여기엔 두가지 단서가 있습니다. 첫번째 단서는 99년도에 코넬리우스가 프로듀스한 타카코 미네카와의 [fun 9]인데요. 본작은 아방가르드 라운지팝을 구사하는 수끼아(sukia)의 사이드 프로젝트 디제이 미 디제이 유 (dj me dj you)와 같이 작업을 했습니다. 본작에서 코넬리우스는 다소 의식적인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디제이 미 디제이 유의 실험적인 사운드를 답습하고 있습니다. 좋게좋게 얘기해서 그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겠지요. 두번째 단서는 이전과 다른 그의 작업 방식인데요. 인터뷰에 따르면 1년정도의 기간을 두고 여유롭게 주위의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스튜디오 사용시간에 신경쓰지않고 큰 강박없이 작업을 했다고 하는군요. 즉 1년의 기간동안 코넬리우스는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어린아이가 레고 블럭을 쌓듯이 차근차근 사운드의 파편을 쌓아나간거지요. 어찌되었건 결과물에 대한 평을 내리자면 나름대로 좋습니다. 구조도 [fun9]에서의 강박어린 디제이미디제이유 답습에 비해 훨씬 탄탄해졌고 매 음반마다 지향해왔던 앨범 전체의 유기적인 결합도 그 어느 음반보다 잘 짜여져 있습니다. 오히려 너무 달아 금새 질렸던 전작들에 비해 오래 곰씹으면서 들을 수도 있을 듯 싶구요. 그래도 크림케익은 아니더라도 카스테라정도라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글쎄요, 이는 단지 저의 과한 욕심일 뿐일까요?

by 유갓솔 | 2004/01/24 17:29 | 벌거벗은 밤 | 트랙백(1) | 핑백(2)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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