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5월 30일
연애시대부재유감

한국 드라마는 잘 안보는 편입니다. 한국 드라마가 수준이 떨어진다거나 해서는 아니고...라는 건 거짓말이고, 솔직히 수준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긴 하지요. 하지만 그것이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고 그것은 내 편집증을 스스로 견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영화를 보더라도 처음부터 크레딧이 올라가는 그 순간까지 다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 것입니다. 그것뿐 아니라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내가 공신력 있다 생각하는 사이트와 사람들의 리뷰까지 모두 훑어봐야 합니다. 이를테면 에피타이저와 디저트가 포함된 풀코스를 다 맛보고 그 식당의 주방장이 누구인지까지 알지 못하면 식사를 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랄까요. 길모어 걸스의 에밀리 길모어처럼 상당히 피곤한 성격이지요. 드라마 역시 보면 처음부터 봐야하고 처음부터 봤으면 끝까지 다 봐야 합니다. '네 멋대로 해라'의 경우는 양동근과 이나영이 나온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다 봤고, 못본건 유료 vod 서비스를 통해서라도 다 봤고, 나중엔 완전판 DVD를 보기 위해 3개월 할부로 dvdp까지 구입했습니다. 예. 그덕에 시디,LP,만화책,책에 이은 또다른 수집품목이 생겼고, 가뜩이나 소득이 적은 와중에도 엥겔지수는 나날이 떨어질 수 밖에 없게 되었지요. 아, 이건 너무 무모합니다. 이를테면, sun ra의 모든 음반을 오리지날 lp로 소장하겠다,고 결심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 드라마는 아예 처음부터 보지 않기로 결심했고, 그 결심은 제법 잘 지켜지는 듯 보였습니다. 연애시대를 보기전까지는 말이지요.
연애시대는 처음부터 보지 못했습니다. 근무 다녀오고 나서 중간부터인가 봤어요. (물론 휴가나오자마자 첫 에피소드를 다운받아 못본 부분은 다시 채웠지만) 그래서 자꾸 끌림에도 불구하고 보지 않으려 했고, 그 결심은 유효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넘어가버렸습니다. 그건 타 드라마에 비해 높은 수준의 영상미 때문도 아니고, 감우성과 손예진의 농익은 연기 때문도 아니고, 한국 드라마가 그간 이룩해온 클리쉐를 모조리 피하는 차별호된 시나리오도 아닙니다. 그건 바로 이 아가씨 때문입니다.

문제는 정보였습니다. 드라마를 볼때면 그 시기에 맞춰 나오는 기사라던지, 그 드라마의 정보를 다 뒤져봐야 직성이 풀리는데 그때는 파견 나갔을때라 외출외박이 허용 안되어서 항상 부탁하던 cine21을 볼 수도 없었고, 인터넷은 더더욱 사용할 수 없는 환경이었고. 그래서 대신 드라마 할때마다 빠르게 지나가는 크레딧을 뚫어지게 쳐다봤습니다. 일단 드라마가 하고 있던 때는 봄이었는데 등장인물들의 복장은 겨울인걸로 보아 사전제작이 분명했고, 연출은.. 한지승? 고스트맘마의 그 감독? 엇, 그러고보니 음악감독은 노영심. 둘이 부부잖아. 아, 대충 아다리가 맞는데. 서태화가 크레딧에서 위쪽을 차지하고 있는 걸 보니 나중에 비중이 높아질게 틀림없어. 원작은 일본인? 일본소설 원작인가. 크레딧을 통해 갖가지 정보를 조합했고, 드라마가 끝난 후면 제가 알아낸 정보를 크게 떠들어대곤 했습니다. 물론 그에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 아가씨의 이름이 이하나라는건 결국 빠르게 지나가는 크레딧과 인물들을 모두 조합하는데 실패해 휴가나온 후 인터넷을 뒤져서 알아냈고. 마치 lp 구입할때 라이너노트 살피듯 꼼꼼히 드라마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그제서야 조금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처음부터 무언가에 매혹되어 본 드라마를 끝까지 봤지만 정작 이 드라마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결말 부분이었습니다. 정확히는 결말에 이르기 직전의 장면들. 감우성이 결혼한 후 상대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애써 무리하는 장면이라던지, 손예진이 피클뚜껑을 따다 안따지자 왜 이런 사소한 것 하나도 되는게 없냐며 울음을 터트리는 그런 디테일들. 이혼후에도 한번도 상대와 떨어져 있던 적이 없다 떨어져 있게 되고서야 비로소 원래의 자신과는 다른 무언가가 되어 망가지고, 자신들이 내린 치명적인 결정에 차마 후회하지도 못하고, 뒤늦게 상대의 부재를 깨닫는 장면들. 제가 이 드라마의 부재를 오늘에서야 깨닫고 연애시대 없는 월요일이 얼마나 무료한 것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것처럼 말이예요. 결국 둘은 극적으로 재회하고, 케이문고의 레즈비언 커플을 비롯, 모두가 연애를 시작하거나 연애를 유지하거나 연애를 시작할때의 흥분에 젖어있거나, 말 그대로 연애시대를 맞으며 끝이 나지만. 상대의 부재를 깨닫는 그 시간이 없었다면 그런 순간은 찾아오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군대간 후 저의 부재를 뒤늦게 깨닫고 자신의 감정을 자각하게 된 모양은 제가 다시 돌아왔으니 어서 제게 고백을! 뭐, 이런 일은 없을테지만. 아무튼- 안녕. 연애시대. 안녕. 이하나. 당신들의 부재는 101번째 프로포즈와 이문식이 채워 줄...수 있을리가 없잖아. 그렇다면. 연애시대의 부재는 과연 그 무엇이 채워줄 수 있단 말인가.

'성남에 사는 b군, 그렇다면 소설을 구입해 보세요.'
이글루스 가든 - 갖은 호기심을 자기 힘으로 해결하라.
# by | 2006/05/30 23:11 | 밤이 듣는다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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